소재(素材)란 글을 쓰고자 하는 재료를 말하며, 일상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은 모두 소재가 된다.이를테면 눈 쌓인 창가에 핀 매화를 보았을 때라든가, 신문 사회면에서 선행(善行)에 관한 기사를 읽고 감동했을 때라든가, 길 모퉁이의 포장마차와 그 주인을 보고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든가 할 때, 매화·선행·포장마차가 소재가 되어 충동을 일으킨다.
일상 속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된다고는 했으나, 작자의 체험이 특이하면 더욱 좋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것이라 해도 남다른 관찰력과 높은 식견의 인격에 사색이 따르면 좋은 수필이 된다.
이와 같이 소재에 의한 충동이 수필을 쓰게 하는 것이나, 앞에서 말했듯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쓰는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즉 쓰고자 하는 중심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주제다.글에 나타나는 주제는 문체나 형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작자의 개성적 인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어떤 형태로든 중심 사상이 들어있어야 하고, 이것이 없으면 수필의 가치는 없다.
주제는 같은 대상이라 할 지라도 작자의 시각(인격)에 따라 달라지므로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가시적으로 겉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시인이 소재의 대상에서 심상을 잡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수필도 실체적 대상에서 심상의 대상으로까지 확대시킬 때 주제는 분명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제 의식이다. 가령 찬바람이 부는 밤길 모퉁이의 군밤장수가 있다고 하자. 큰 봉지를 사드는 사람, 작은 봉지를 사드는 사람, 어떤 날은 사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날도 있다. 이 때 작자의 눈에 비치는 군밤장수의 모습에 작자의 느낌(사상)이 붙는다.
이러한 군밤장수가 소재가 되었다고 했을 때 군밤장수는 작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첫째, 군밤장수가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둘째, 그저 있구나 하는 정도일 수 있으며, 셋째로 군밤을 사면서 그가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관계 이상으로 군밤장수에 대한 사정이나 연민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정신에 바탕을 둔 것과, 타산적·이기적인 상반된 인생관의 글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소재와 주제와의 관계는 작자의 시각에 따라 갈려진다. 글이 사람이란 말은 이런 데서 나오는 말이다. 독자를 움직이자면 글 속에 인간정신이 깔려 있어야 한다. 짤막한 수필이 장편 소설 못지않은 질량감을 지니는 이유도 이런 점에 있다. 예문을 통해 소재와 주제의 갈림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자.
[예문 1] 군밤장수
밤 늦게 돌아오는 동네 어귀에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어디에 사는지는 모르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좀처럼 사드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다 사는 사람을 보면 내가 군밤장수가 되기라도 한 듯 마음이 밝아진다.
아주머니는 오래 전부터 철따라 리어커 장수를 한다. 여름이면 참외, 수박을 팔고 가을이면 밤을 굽기 시작한다. 가을이 가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카바이트 등불을 깜박이며 밤 늦게까지 행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학생 아니면 중학생쯤의 딸아이가 번갈아 나와 어머니를 돕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혹시 없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지나가다녔다.
나는 무심할 수가 없어 팔리지 않는 모습을 볼 때 가끔 군밤봉지를 사들곤 했다. 고향에서 군밤을 만들어 먹던 일을 회상하면서 하루에 팔리는 양을 묻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밝게 웃으면서 팔릴 때도 있지만 별로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군밤을 사면 두서너 개를 언제나 덤으로 집어주곤 한다. 어렵게 살아도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그렇듯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은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리 속에서 동생과 먹으면서 군밤장수 아주머니 얘기를 했다.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어머니를 따라 나와 있는 딸아이를, 동생은 자신에게 비교하면서 말했다. 살아가는 길이 제각기 다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고난을 딛고 살아가는 아주머니 가족들의 얼굴엔 어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들으니 날씨가 또 추워지려는 모양이다. 늦은 밤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와 차 소리가 소란스럽다. 자주는 못 팔아줘도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군밤장수 아주머니의 희망을 돋구기 위해서도, 이따금 나는 군밤봉지를 사들곤 한다. (회사원)
[예문 2] 군밤장수
냉장고에는 언제나 갖가지 먹을 것이 채워져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입맛대로 먹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사시사철 음료수는 물론, 이른 봄부터 딸기로 시작해서 한 여름의 수박에 이르기까지 고루 갖춰 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불평이다. 어쩌다 미처 대놓지 못할 때가 있으면 참지를 못한다. 그럴 때면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불평을 왜 들으랴 싶어 열심히 채워 놓는다. 하지만 그래도 정성이 부족할 때가 있다.
우리집 아이들은 이처럼 군것질을 즐기는데, 지난 가을에는 밤 줍는 모임에 데리고 나갔다. 남이섬으로 갔지만 거기까지 안 가도 밤은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하지만 맑은 공기 마시며 즐기고자 해서 승용차로 나섰던 것이다. 돌아올 때는 상당한 분량의 밤을 싣고 왔다. 오던 길로 삶아서 주었더니 군밤 맛만 못하다고 한다. 이튿날 군밤을 만들어 먹었으나 웬일인지 길가에서 파는 것과 같지 않았다.
아이들의 불평에 따라 어제는 동네 어귀의 군방장수로부터 사들고 돌아왔다. 동창회를 마치고 늦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 봉지를 집어들자 덤으로 두서너 개 넣어주었지만, 내가 몇 개 더 집어 넣었다.
동네 어귀의 그 군밤장수는 매우 궁색해 보인다. 지나다니며 몇번 팔아주었더니 나를 보면 인사를 하지만, 그 인사가 내게는 부담스럽다. 군밤을 팔아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를 샀다. 며칠 전부터 바나나가 떨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동네로 들어섰을 때 군밤장수의 시선을 느꼈지만, 못 본 체하고 지나쳐 왔다. (주부)
같은 소재를 쓴 글인데도 주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문 1]은 삶의 진실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자기 성찰이 깔려 가치 있는 글이 되고 있으나, [예문 2]의 경우는 문장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도 한마디로 속된 글이다. 이런 글을 속문이라 한다.
자신의 행복감에만 도취되어 있고 진실성이라든가 삶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질주의, 이기주의의 극치를 드러내 자신의 행복만을 그리고 있다. 이것을 수필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두 예문을 비교할 때, 전자는 미혼 여성이지만 삶을 보는 눈과 생각의 깊이가 있고, 후자는 인생을 알 만큼의 나이에다 자녀를 가진 주부인데도 삶에 대한 생각이 천하고 속되기 그지없다.
오늘의 한국 수필에는 이런 류의 글이 적지 않다. 물론 작자의 개성적 영역이므로 남이 간섭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글을 써야 할 이유와 읽어야 할 가치가 없다.
자료참조:<galaxy.channeli>
| |